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함평 모씨 (문단 편집) == 시조 == 시조는 충정공 모경(牟慶) 대장군(大將軍)[* 현대로 치면 국방부장관.]으로 [[북송]]에서 넘어와 [[고려]]에서 개파했는데, 사실상 [[금나라]]에 의해 북송이 망하게 되어 고려에 남게 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는 [[고려]]에서 일어난 [[이자겸의 난]]을 진압한 일등공신이다. 고려 정부로부터 익대좌명공신(翊戴佐命功臣)이라는 공적을 받았고, 후에 고려에 귀화하여 전라도 함평군수를 지냈다. 앞서 중국에서는 병부상서와 호북경서선무사, 이부상서, 대사마 대장군, 시찰단장으로 지낸걸 보면 타고난 무인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낮은 인구 수의 영향인지 현재 잘 알려지지 못했으나 몇몇 위인전에서는 다루고 있다. 한편 [[삼국시대]]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이 정복한 [[부여]]를 관리하기 위해 북부여수사라는 관직을 주어 파견한 [[모두루]](牟頭婁)라는 인물의 묘지명이 발굴되었는데 모두루의 가문은 초대 국왕인 [[동명성왕]]대부터 고구려 왕실을 섬기며 공을 세워온 직속 가신 가문으로 여겨진다. 성씨 사용이 활발하던 시절이 아니라 모두루가 그냥 이름인지 성+이름인진 불분명하나 성씨를 사용한 것이 맞다면 고구려에서 모씨는 부여 지역[* [[부여성]]을 중심으로 한 현 [[중국]] [[지린성]] [[창춘시]] 일대.]을 세습적으로 관리해온 귀족 가문이 된다. 모두루는 부임지인 부여에서 광개토대왕의 승하 소식을 들었는데 몹시 슬퍼했다고 한다. 백제 [[문주왕]]의 성씨가 모씨(牟氏)라는 기록이 있다. 문주왕이 중국 위진남북조 시대 송(宋)나라와 주고받은 서신에서 등장한다. 삼국유사에도 모씨(牟氏)가 등장하는데, "백제 [[동성왕]]은 '모대(牟大)', 문주왕의 동생이자 곤지의 아들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일본서기에는 '말다(末多)'로 기록되어 있는데, 발음은 비슷하다. 참고로 혈연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문주왕의 동생이라는 기록과 문주왕의 아들이라는 기록이 둘 다 있어서 확실하게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백제의 왕성은 부여씨였고 문주, 모대, 말다 등은 그냥 이름으로, 당시의 고유어를 한자로 음차한 것으로 본다(모두 당시 말로 '맏이'의 음차로 추정된다). 모를 성씨로 사용한 것은 다른 사서에도 전혀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가능성은 매우 떨어진다. 혈연적인 부분은 보통 동성왕이 문주왕의 동생인 부여곤지의 아들인 것으로 본다.] 한편 최근 발굴된 백제의 목간에서 6품 나솔을 역임한 모씨(牟氏)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아예 이름이 모씨였는지 이름을 제외한 그냥 성씨만으로 모씨라 적힌 건지는 불명.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